안 할 줄도 아는 것
---특별 기고
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으로 활동하며 수많은 저작을 남긴 작가 장 도르메송이 지난 5일 세상을 떠났다.
수년 전 그를 만났을 때 나는 물었다. 나이 들면서 새로 배운 것 가운데 가장 값지다고 여기는 것이
무엇인지.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특유의 짓궂은 미소와 함께 돌아온 답은 이랬다.
"나이 먹어서야 비로소 배운 것 중 가장 쓸 만한 것이라면, 뭔가를 안 할 줄도 알게 된 거죠."
당시 그 대답이 부잣집 응석받이만이 할 수 있는 얘기처럼 들렸다. 거절한다는 일조차 힘에 부칠 정도로
날 때부터 호의에만 둘러싸여 살아온 평생이니까 그러려니 했다.
요즘 세상에서 살다 보면 거부할 수 없는 지시를 받거나 내키지 않아도 뿌리칠 수 없는 일자리를
만나는 일이 누구에게나 왕왕 벌어진다. 거절하기 어려운 까닭이라면야 법적 강제가 따르기 때문일 수도 있고, 아니면 뭔가를 안 하겠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물질적 여력이 없어서일 수도 있다.
여기서 안 하겠다고 하는 것은 미래를 향해 열린 문을 스스로 닫아 버리는 것이요,
내일이라고 해서 반드시 뭔가 다른 제안을 또 받을 수 있다는 뾰족한 수도 없건만
당장 내게 들어온 선물을 거절하는 것이나 같다. 안 하겠다고 하는 것은 적(敵)을 만드는 일이고,
고객이나 파트너 또는 일자리를 잃게 될 위험을 감수하는 일과 다름없다.
그렇지만 장 도르메송의 말은 새겨들어 볼 가치가 있다. 왜냐하면 "안 할 줄도 알게 된다"는 것은
우리가 정말로 원하는 것을 선택하겠다는 용기를 뜻한다. 식사나 약속, 이성 교제, 구직이나 구매,
상사의 지시 등 다른 사람의 욕망에 어쩔 수 없이 휩쓸리지 않음을 의미한다.
안 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평범한 일상에서는 늘 비범한 영웅적 행위라고 할 수 있다.
우리에게 자유가 있다는 표시다. 아이가 안 하겠다고 하는 것도
어른이 그의 자유의지에서 내리는 결정과 다르지 않다.
안 할 줄도 알게 된다는 것은 선택의 윤리를 세우게 한다. 이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의 폭을 넓히게 한다.
안 할 줄도 알게 된다는 것은 책임을 피하지 않음을 의미한다. '어쩌면'이라 말하지 않는 것이다.
여기에는 '나중에' '좀 더 지켜보자' '괜찮을 것도 같다' '나중에 다시 얘기하자'는 말도 포함된다.
결국에는 거짓말을 하지 않고, 자기기만을 그만두며, 두려움을 버릴 줄 알게 한다.
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버리고 내 거절의 본뜻, 즉 내가 맡아서 할 수 있는 일과
거절할 수밖에 없는 일을 사이에 두고 피어나는 의혹을 방치하지 않도록 한다.
그럼으로써 '어쩌면'이라는 말은 들릴 일조차 없게 하겠다는 것이다. '어쩌면'이 양산해 내는
그 모든 오해와 폭주(暴走)를 떠올려 보라. 불분명함을 숙주로 삼아 배를 불리는
그 모든 가증할 행위를 생각해 보라.
'안 할 줄도 알게 되는 것'은 '잘할 줄 아는 것'이다. 그것은 진정한 자신이 되는 길의 시작이다.
'안 할 줄도 알게 되는 것'에는 '알다'란 말이 들어 있다.
이 말은 당신 입장에서는 원하지 않지만 다른 누군가의 눈에는 당신 마음에 들 것이란 생각으로
제안한 일을 얼굴 붉히는 일 없이, 누구를 망신 주지 않으면서도 거절하는 기술을 습득하는 것과 같다.
거절당하는 입장에 있는 이의 수긍과 합의, 양해를 이끌어 낼 길을 찾는 것이다.
안 하겠다고 말하는 일은 상호 존중을 기반으로 다른 사람과 진정한 관계를 수립하는 기회로까지
이어질 수 있다. 장 도르메송의 말이 옳다면, 안 할 줄도 알게 된다는 것은 결국
'해 보겠다'는 대답이 주는 선물의 가치를 훨씬 더 높여 주는 최상의 태도라고 하겠다.